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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口二言之人物 - 초주2001-05-12 19:25:36
 난세간웅


"전쟁 얘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리는 인물" 하면 초주가 떠오른다.
그는 모든 전투에서 무조건적인 반대로 인하여 의외의 눈길을 끄는 인물이다.
공명 남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수 차례에 걸친 북벌..., 그 전에도, 무슨 촉한 전투의 순서로 굳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항상 초주의 반대가 따랐다. 공명 사후 강유가 그의 북벌 배턴을 넘겨받고, 몇 차례 등애와 접전할 때도 역시나 초주는, 계속 출정을 말렸다. 참으로 질긴 사람이라 생각된다.

그는 그러한 행동으로 인하여, 많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신하', 또는 '무리한 북벌을 혼자 힘으로 막으려 했던 밝은 헤아림을 가진 자' 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와 같은 기존의 의견에 반대한다.
초주는 태사(太史)에서 광록대부로까지 벼슬이 계속 상승하였으니, 선제에 이어 후주 유선까지 그를 신임한 셈이다. 또한 천문에도 남달리 밝아 그 방면에 명성을 얻기도 한 선비이다.
그러한 그가, 왜 그렇게도 국가의 모든 출병을 거의 전부이다시피 반대하였을까? 초주 이외에도 제갈량이나 강유의 북벌에 반대한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초주와 같이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반대는 하지 않았고, 만에 하나라도 공명의 신변이나 나라에 해가 될만한 전쟁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였을 뿐이다.

북벌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우선 공명은 차치하고), 강유가 쓸데없이 무모한 북벌로 국력을 매우 저하시켰다고들 한다. 하지만 강유는 공명의 뜻을 이어받아 두 맘을 품지 않고 위(魏)를 쳐 없애는 데 진력하였던 사람이다. 위의 대장 등애와 더불어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뒤엎을 기회까지 조성하였으나,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어이없는 종말을 보게 되었다.
만약 강유가 북벌을 하지 않고 가만히 지키고만 있었다면, 촉한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오히려 천하 정세에 역류하여 낙오된 세력이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으나, 여하튼 초주는 그렇게 강유가 외로이 고군분투할 때도 늘 반대를 하였다.
북벌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살아남기 이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전쟁이었다. 대국인 위를 평정한다는 목적은 달성하기가 어려웠으므로, 자연히 여러 차례에 걸친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고, 그에 따른 희생도 각오를 해야 마땅했던 것이다.

초주의 거동을 살펴보면, 처음 유비 세력에 들어왔던 초기에 비하여 후기로 갈수록 상당히 콧대가 높아져, 서슴없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승승장구한 벼슬과 천문을 헤아릴 줄 아는 재주를 믿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수국론(讐國論)이라는 글까지 내밀어가면서 기어이 출정을 말렸다. 물론 그 당시는 촉한의 국력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었고, 초주는 그 점을 중점적으로 지적하였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공감할 여건이 있다.
하지만, 반대만을 남발해서 이뤄지는 국가대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노라면, 초주의 행동은 항상 출병이 결정된 뒤는 물론이려니와, 군단의 배치와 장졸의 분기까지 다 끝난 시기에 주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초주가 반대를 한다고 이미 준비가 끝난 출병이 취소될리는 만무하다고 본다.
이미 출병이 결정되었는데, 거기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는 것은, 출정이 중지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잘 알면서도 모종의 개인적 의도를 앞세워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또한 사기를 북돋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려는 장졸들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등애가 음평의 샛길을 넘어 면죽관을 우려 빼고 성도까지 당도했을 즈음, 누구보다 강력하게 항복을 주장한 사람 역시 초주였다. 후주 유선이 너무도 중대한 사항이므로 결정을 보류하자, 수 차례 상소문까지 올리면서 항복을 고집함으로써 뜻 있는 후세 독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가 제시한 항복 이유는 이렇다. 남만으로 가자니 그곳 사람들의 후환이 두렵고, 동오로 투항하자니 나중에 오(吳)까지 합병 당할 경우, 황제된 몸으로서 두 번이나 굴욕을 당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북지왕(北地王) 유심(劉諶)은 그와 같은 초주의 망언에 서릿발같은 호통을 치며, 끝까지 싸워 욕된 죽음을 피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리석고 나약한 아비 유선의 항복 결정이 있었고, 이에 치욕감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고 만다. 따라서 유심은 훗날 참으로 그 마음가짐이 깨끗한 인물로 칭송된다.
그토록 창창한 젊은이도 힘써 행할 일과 그렇지 못할 일쯤은 헤아리고, 목숨을 걸고서 나라를 구하려 애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의 원로라 할 수 있는 초주가 어찌 그럴 수가 있었던가?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렇다. 초주는 그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차츰 추구하는 이상도 변하였다. 결국 대세가 기울어지자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고 위나라에서 벼슬이나 한 자리 하려고 그러한 처신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명색이 원로대신이니, 터놓고 항복을 거론하기는 곤란하였을 것이다. 결국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황제의 입장을 앞세운 그럴 듯한 타이틀을 붙임으로써 후세에 남을 오명을 덜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아직도 수만의 군사가 남아있고 검각에서는 강유가 많은 군사를 거느린 채 온전히 버티고 있던 시기였다. 강유는 성도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들으면 반드시 전력으로 구원을 올 것인 즉, 장졸들을 독려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더라면, 검각을 에워싸고 있던 종회군의 포위를 뚫은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발맞추어 성안에서도 호응하여 앞뒤로 등애군을 협공했더라면 당시의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운이 좋았더라면 적의 수장 등애를 사로잡을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주는 그렇게 저항할 생각은 티끌만큼도 해보지 않은 채 시종 항복만을 고집하였다.
만약 당시 초주가 충절을 지켜 싸우다 죽거나, 끝까지 힘을 다해 싸워본 뒤에 항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만약 그가 이 둘 중 하나의 방법이라도 택하였더라면, 후세에 이처럼 그의 본심을 의심하는 눈길쯤은 없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화살 한 자루 날려보지도 않고 무조건 항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초주..., 분명 흉중에 다른 흑심을 품고 있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렇지가 않고서야 어찌 그렇게도 쉽사리 백년 대기업을 고스란히 적에게 넘겨줄 수 있었단 말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바로 초주를 이르는 말이 아니련지 싶다.







덧글 7개
 위연문장 이미 결정된 전쟁에 반대를 하는것은 확실히 잘못된 일이지요 2001/05/12 09:05 
 위연문장 그러나 초주의 의견은 내정을 다지고 북벌을 해야 안정적이다는 생각에 한 반대가 아닐런지요. 2001/05/12 09:05 
 요화원검 초주라..물론 그런점도 있지만 촉말기에 그나마 정신박힌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당 2001/05/13 03:05 
 촉대장군강유 초주라..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쓸모없는 인물이라 봅니다만..ㅡ.ㅡ;; 2001/05/14 01:05 
 오장군육항 북지왕 유심이 초주에게 무어라 했던가... 2001/05/14 07:05 
 난세간웅 선제 살아생전에는 함부로 대사를 말하지 않던 선비가 이제는 거침없이 말한다.. 2001/05/16 06:05 
 난세간웅 이런 말이었습니다. 유심이 꾸짖은 말. 2001/05/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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