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연 :: 동호회


정삼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치기 어린 시절에 남겨...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와 함께 떠...
공지사항
 중화TV 삼국지 덕후 콘...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과 함께 떠...

三國正統論삼국정통론2001-03-29 16:42:22
 티니스


*** 三國正統論삼국정통론 ***

정통의 뜻을 새겨보는 '正이란 천하의 부정을 바로잡는 것이며, 統이란 분열되어 있는 천하를 통일하는 것'(<후정통론>소동파)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정통에 대한 논의는 삼국시대의 정통을 어디에 둘 것이가? 에서부터 출발한다.
삼국시대 정통설에 대한 논의 중 가장 종합적이고 볼만한 것으로는 《사고전서총목》이 있는데, 아쉬운 점은 간략하여 설명을 약간 첨가하면서 논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三國志六十五卷】晉陳壽撰,宋裴松之注.壽事蹟具《晉書》本傳,松之事蹟具《宋書》本傳.凡<魏志>三十卷,<蜀
志>十五卷,<吳志>二十卷.其書以魏爲正統,至習鑿齒作《漢晉春秋》始立異議.自朱子以來,無不是鑿齒而非壽,然
以理而論,壽之謬萬萬無辭.以勢而論,則鑿齒帝漢順而易,壽欲帝漢逆而難.蓋鑿齒時晉已南渡,其事有類乎蜀, 爲偏
安者爭正統,此孚於當代之論者也.壽則身爲晉武之臣,而晉武承魏之統,僞魏是僞晉矣,其能行於當代哉!此猶宋太祖
簒立近於魏,而北漢,南唐蹟近於蜀,故北宋諸儒皆有所避而不僞魏.高宗以後偏安江左近於蜀,而中原魏地全入於金,
故南宋諸儒乃紛紛起而帝蜀....《四庫全書總目》卷四五 史部一 正史類一
【삼국지육십오권】진의 진수가 편찬하였고, 송의 배송지가 주를 달았다. 진수의 사적은 진서 본전에 갖추어져 있고,
배송지의 사적은 송서 본전에 갖추어져 있다. 모두 <위지>삼십권,<촉지>십오권,<오지>이십권으로 되어 있다.
그 책은 위를 정통으로 삼았는데, 습착치가 《한진춘추》를 지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주자 이래로 습착치가
옳고, 진수가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이치로 논하여도 진수의 잘못은 명백하다. 그러나 세력으로 논한
다면 습착치가 (촉)한을 제로 삼는 것은 순조롭고 쉬운 일이며, 진수가 (촉)한을 제로 삼는 것은 거역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일이다. 습착치의 시대는 이미 진이 남쪽으로 건너가 그 일이 (촉)한과 유사하다. 이미 한쪽에서 안정을 얻어
정통으로 삼으려 하였으니, 이는 당시의 상황에 따라서 논한 것이다. 진수는 자신이 진 무제의 신하였는데, 진무제가
위의 정통을 이어받았으니 위를 위(비정통왕조)로 하면 이는 진을 위라 하는 것이 되는데 당대에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했겠는가! 송태조의 찬립은 위와 가깝고, 북한과 남당의 사적은 촉과 가까웠다. 그리하여 북송의 유자들은 모두
피하는 바가 되어 위를 위(비정통왕조)로 보지 않았다. 고종 이후 송이 강남의 한쪽에 안주하게 된 것이 촉과 비슷
하고, 중원의 위 땅이 모두 금으로 들어가자, 남송의 유자들은 분분히 일어나 촉을 정통으로 삼게 되었다....《사고전
서총목》권사십오 사부일 정사류일


진수가 왜 위를 정통으로 삼았는가에 대해서는 《사고전서총목》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진이 위로부터 선양받았으
니 그는 무제의 신하였기에 , 당연히 위를 정통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위를 정통
으로 삼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의 《삼국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촉)한 정통론은 동진 습착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가 (촉)한 정통론을 주장한 이유는 당시 환온이 찬탈의 뜻을
품자 습착치는 《한진춘추》를 써 한 광무제부터 진 민제까지 기록하고, (촉)한을 정통으로 삼아 위가 한을 이어받
아 선양 받았으나 이것은 찬탈이라 하여, 환온의 찬탈을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진서 습착치전》)


송대에 이르러 정통론이 크게 부각되었는데, 남송 시대에 (촉)한정통론으로 완전히 굳혀지게 된다.
북송의 정통론자들로는 구양수, 장망지, 사마광, 소동파, 장방평, 진사도 등인데, 그 대표자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구양수이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 위를 정통으로 내세웠는데 장망지는 구양수가 위를 정통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
다고 지적했으나, 소동파는 이것을 모두 비판하였다.  
남송의 대표적 정통론자들은 주희, 정사초등으로 주자가 그 중심이다.
편년체 사서의 걸작 《자치통감》은 연호로 기년을 사용해야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왕조가 있던 시기
의 기년의 연호는 어디로 삼아야 하는가? 였다. 왜냐하면 그 연호를 사용한 나라가 곧 정통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
다. 사마광 선생은 스스로 말하길 '학식이 천박하여 정윤(정통 비정통)의 구분을 알지 못한다'(사마온공집) 라고 했으
나, 사실 이것은 사마광의 지나친 겸손이며, 사마광은 정통문제에 대해서 초탈한 모습을 보인다.

此皆私己之偏辭,非大公之通論也....豈得獨尊奬一國謂之正統,而其餘皆爲僭僞哉!...魏ㆍ宋ㆍ齊ㆍ梁ㆍ陳ㆍ後梁ㆍ後唐
ㆍ後晉ㆍ後漢ㆍ後週年號,以紀諸國之事,非尊此而卑彼,有正閏之辨也.《資治通鑑》卷六十九 魏紀一 黃初二年
이 모든 것(후대의 정통론)은 자신의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로, 크게 공정한 통론이 아니다....어찌 홀로 일국만을 존
중하여 정통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참위라 할 수 있겠는가!...위ㆍ송ㆍ제ㆍ양ㆍ진ㆍ후량ㆍ후당ㆍ후진ㆍ후한ㆍ후주의
연호로써 각 나라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 존비를 구별하여 정윤(정통 비정통)을 구분한 것은 아니다.《자치통감》
권육십구 위기일 황초이년

이어서 선생은 (촉)한이 정통을 잇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길

昭烈之於漢,雖云中山靖王之後,而族屬疏遠,不能紀其世數名位,亦猶宋高祖稱楚元王後,南唐烈祖稱吳王恪後,是非
難辨,故不敢以光武及晉元帝爲比,使得紹漢氏之遺統也.《資治通鑑》卷六十九 魏紀一 黃初二年
소열제의 한이 비록 중산정왕의 후예라고 하나 친촉관계가 멀어서 그 세대의 수와 이름, 관직 등을 기록할 수 없으
며, 또한 유송의 고조(유유)가 초원왕의 후예라고 칭하는 것과, 남당열조가 오왕 각의 후예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옳고 그름을 구별하기 어려운 까닭에, 감히 광무제(유수, 후한의 초대황제)나 진의 원제(사마예, 동진의 초대황제)와
비교하여서 한나라의 유통을 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자치통감》권육십구 위기일 황초이년

남송의 주희는 사마광의《자치통감》에 불만을 느끼고 《통감강목》을 저술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이 이 책의 주안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정통에 있다.'(주자어류)라고 답한다. 삼국시대의 정통도 (촉)한으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주자
의 촉한 정통론은 명말까지 이어진다. 《자치통감》을 50권으로 줄인 강지의《통감절요》도 촉한의 연호를 따르고
있으며, 그 이후의 사람들도 진수의 위정통을 부당하게 여겨 새로이 책을 썼다.(아래 참고) 이러한 것들은 촉을 정통
으로 삼았다는 것만 빼면 사학적으로 볼 때 취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사료를 재편집했을 뿐이다. 그래도
《통감절요》는 초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도 이러한 조류에서 탄생한 주자사
상의 아류작인 것이다.
종합해 보면 조위정통론은 중국이 통일된 서진이나 북송시대에 일어나고, 촉한 정통론은 동진이나 남송시대에 주류
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續後漢書》宋蕭常撰 47卷《속후한서》송소상찬 47권
《續後漢書》元 經撰 90卷《속후한서》원학경찬 90권
《季漢書》明謝陛撰 56卷《계한서》명사폐찬 56권
《續後漢書》明吳尙儉撰 60卷《속후한서》명오상검찬 60권


청대에 이르러서는 정통론에 대해 초탈한 모습을 보인다. 왕부지는 '촉한이 정통이라 하나 그 정통은 진으로 넘어갔
고, 진은 위를 찬탈하였는데 어찌 한의 황통이 계승되어 건국된 것인가? 이미 사라진 도를 이어지도록 쉴새없이 찌
걸이니 무엇 때문인가?'《독통감론》라고 하였다. 그는 위선에 찬 습착치와 이런 일에 대해서 광적인 편집 증세를
보이는 주자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청대의 위대한 사가 장학성은 '《삼국지》《자치통감》를 비난하고 있는데, 진
수는 서진사람이고, 사마광은 북송시대 사람이니 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군주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문
사통의》라고 하여 진수와 사마광이 시대의 흐름에 따랐을 뿐임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에는 이러한 정통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이런한 논의가 모두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통설 속에는 그 시대의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정통 문제는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였
다. 나는 주자의 정통론은 결코 동조할 수 없다. 本紀란 제왕에게만 쓰이는 편목으로 진수가 조위에게만 紀를 세웠
다고 해서 그가 골수 위정통론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다.(위 사고전서, 장학성의 글 참고) 사마광도
자신이 쓴 연호도 정통에 따라 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주자는《통감강목》을 써 그들을 깍아내리는 것은 도대
체 무엇 때문인가?

덧글 10개
 난세간웅 티니스님이 오랜만에 컴백하셨으니 좌자님도 오시겠군요. ^^ 2001/03/29 05:03 
 오장군육항 호오~ 새로운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려~ 2001/03/29 05:03 
 神醫화타 쩝..나도 언제쯤 티니스님정도의 지식을 갖추려나. 2001/03/29 07:03 
 神醫화타 쩝..나도 언제쯤 티니스님정도의 지식을 갖추려나. 2001/03/29 07:03 
 난세간웅 더블 엔터를 누르셨나보군요... ^^; 2001/03/29 08:03 
 공명 우와!!! 2001/03/29 10:03 
 曹操孟德 역시 옛실력은 줄지도 않으시나봐~! ^^; 2001/03/30 12:03 
 좌자 흐음...역시 수준이 있군여...그려...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지 못한는 말 누가 했등 2001/03/30 06:03 
 좌자 겨...그냥 지나기 섭섭혀 또 한마디 하믄...너무 사마광 편만 드는거이 아닌지여...이 2001/03/30 06:03 
 좌자 러믄 또 화낼랑가? 2001/03/30 06:03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green
연구소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