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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의 죽음에 대한 명상2004-01-03 01:15:35
 허소자장


여남의 허소입니다.

1)정사 삼국지 권2 순욱전의 주)에서 인용
.....세상의 많은 논자들이 순욱이 위씨에게 협력한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한왕조가 무너지게 되었고 군주와
신하의 관계도 뒤바뀌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비록 말년에 들어서 순욱의 태도가 바뀌기는 했지만, 천명의 이행
을 구제할 방도를 찾지도 않았으며,공적은 이미 도의에 어긋났으므로 견식 또한 결합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평가는 세상의 평판과 같은 논조를 취하고 있지만, 순욱의 위대한 면모를 제대로 파악하고 한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순욱이 어찌 조조의 지기(志氣)를 알지 못했으며, 쇠락해 가는 한 나라의 꼿꼿한 신하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이 당시 왕도(王道)가 이미 쇠락했고, 사악한 풍조가 극도에 달했으며,영웅호걸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사람들마다 딴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 난세를 바로잡고 시세에 따른 계획을 세울 수 없었다면 한왕조는
멸망에 빠지고, 백성들도 멸망해 버렸을 것이다. 과연 순욱과 같은 인물이 시대의 영웅을 보좌하여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꿔 놓으려 할때, 선택할 수 있었던 인물이 조조가 아니면 그 누구이겠는가?

2)영웅의 역사 권6 순욱편 (하루나 아키라)중에서 인용
........순욱은 결국 청의파에 속한 사람으로서 한나라 황실을 중심으로 질서있는 세계가 재건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한나라 황실의 부흥을 꾀해줄 만한 인물로서 조조를 선택하여 그를 위해 머리를 싸매면서 정책을 궁리해
주고 조조의 패권확립을 도왔다. 그러나 결국 조조도 자신의 야심을 위하여 후한의 권위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 이상의 기대를 버리고 자신이 지키고자 한 옛 질서 아래 숨을 끊었던 것이다. 특히 순욱이
옛 질서 아래에서 숨졌다는 점은 청류파의 계보를 잇는 자로서의 순욱의 면모를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다.
조조를 격려하고 키워주고 그를 위해서 책략을 짜내고 인재를 추천해준 순욱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알을
부화시켜보니 살모사였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조의 입장에서도 최고 참모로서의 충성심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자 매우 낙담했슴이 틀림없다. 이렇게 될 경우, 결국 죽지않으면
안되는 쪽은 참모인 순욱의 몫인 것이다.

3)사마의가 순욱에게 한 평가(물론 그도 순욱의 천거로 등용되었다)
.......나는 책에 씌어진 것이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눈과 귀로 견문해 왔으나 백수십년에 걸쳐서 순령군(순욱)
에 미치는 현재(賢才)를 발견하지 못했다..

4) 이철희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이처럼 막강한 참모진을 구축하고 있는 조조의 그릇도 대단한 것이다. 참모가 물이라면, 지도자는 그릇이다
그릇이 커야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다. 조조는 단연코 삼국지에서 가장 큰 그릇이었다. 그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참모들의 맏형이 순욱이었다. 그는 참모들을 잘 이끌었다. 순유, 곽가, 정욱 등도 모두 순욱이 추천한 인사들
이었다. 보스에게 능력있는 사람을 천거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인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순욱은 총애를 독점하지도, 누구를 배척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덕이 있었다. 전투는 계책으로 하지만, 전쟁은
경륜으로 한다.장량처럼 전체 구도를 운영하는 전략가는 순유, 가후가 아니라 순욱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조
휘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은 순욱이다.......

논단의 토론을 읽어보았다. 1)배송지의 주를 보면 전반부의 의문점과 후반부의 반론이 나그네와 좌자의 토론에
서 재연된 느낌이다.. 토론방에서 다시 나그네의 재반론을 읽어보았다. 별다른 진전없이 지엽적인 문구에 매달린
느낌으로 답답하다. 몇 가지 새로운 주장을 나열해본다(주로 나그네쪽이었고, 좌자의 논지는 배송지주의 후반부
와 2)에서 인용한 주장으로 대체로 압축된다)
- 나그네 주장의 새로운 점 몇 가지
순욱은 관도대전후 12년간 침묵했다...그는 조조의 주요 가신세력에서 배척당했으며 자결할 무렵에는 이미 힘을
잃은 것으로 본다....마지막 순간에 힘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차라리 동승과 연계하여 한번쯤 멋진 대결을
하다 죽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과거 나그네의 글을 무수히 읽었던 나로서는 그 풍부한 상상력에 돌을 던지려 함은 아니다. 항상 그렇듯 역사의
논리적 정황에 따라 나그네에게 반론을 던진다는 것은 자유를 추구하는 그에게는 구속일 따름이겠기에....
한 마디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나그네와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몇 가지 의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12년간의 침묵은 권력에서 밀려난 증거인가? 그는 패도를 추구하는 패거리들(동소,가후,진림,왕찬,화흠 등)
에게 힘을 잃은 노신(老臣)에 불과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는 정황증거는 없다. 그가 죽었던 212년 바로 그 순간까지도 동소를 비롯한 그가 추천한
신하들이 국공의 봉작과 구석의 예물을 조조에게 하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국가 최고의 중대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그는 분명히 국가의사결정에(물론 주로 조조의 의중이었겠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위치에 있었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갈 길은 정해져 있었다 동소를 비롯한 책사들은 조조의 의중
을 전달했다. 순욱은 반대했다..(당신이라면 당신이 천거한 후배가 찾아와 조언을 구할 때 그 배경에 대해 묻지
않겠는가? 조조의 의중이 어떤가 하는 것 정도는 말이다..그리고 후배라면 그런 조조의 의중을 슬몃 흘리지 않겠는가? 다시말해 순욱은 조조의 의중을 따르려 했다면 얼마든지 사전에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복황후와 순욱의 입장차이에 대해서다.. 복황후의 모반사건은 헌제의 왕권획득이 주 목적이었다.
순욱은 어떤 사람인가? 원소에게서 떠나 조조을 택할 정도로 인물감식안이 당대 제일의 사람이다. 헌제가 어떤
인물인가? 그는 한왕실의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의 인물됨이 과연 순욱을 끌어당길 수 있는 당대의 군주
로서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던가?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나그네는 동승을 인용하는가? 차라리 형가처럼
조조를 향해 단신으로 비수를 준비하는 것이 합당한 주장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더 모순이 된다. 조조야말로
순욱이 숙고끝에 당대의 최고 군주로서 낙점한 인물이 아니던가? 주변에 그가 흠모한 다른 인물이 없는 상황에
서 그가 자신이 스스로 선정한 군주를 향해 단순히 칼을 들이댄다면 그 얼마나 코미디인가?

이제 명상의 시간인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처신의 달인 가후에 대해서 글을 올려본 적이 있다. 꽤 오래전이었는데.. 놀랍게도 이곳 토론장에서
누군가가 나도 몰래 올려놓았다. 고맙게 생각한다. 지나온 흔적을 다시 보는 것도 자기반성의 좋은 기회이므로...
그 때 나는 그 후속편으로 순욱의 장렬한 전사를 칭송한 적이 있었다. 2)번항과 관련있는 부분으로 지조와 대의
명분을 지키는 신하와 패권을 거머쥐려는 군주사이에 나타나는 역사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역린을 건드려야만 했던.....그러나...
최근의 4)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겨본다..

순욱은 조조보다 연장자였으며, 원대한 계책과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왕좌지재의 재목이었다. 3)의 예에서 보듯
사마의조차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그의 구상은 당대 모든 권신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4)번 이철희의 주장도 의미가 있다.....
순욱은 주공이나 제환공처럼 조조의 역할모델을 설정하고 황제를 보좌하는 빛나는 군주로서만 자리매김하기를
바랬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점..... 곧 조조가 아직은 왕권의 자리에 오르면 안되며...
좀 더 시기가 무르익기를 기댜려야 한다는 점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만일 조조가 좀 더
황제를 보좌하면서 스스로 선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정녕 유비도 손권도 쉽게 황제를 칭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 이후로 전개된 역사적 진실을 보더라도 한나라 사직에 비하여 조위로 이어지는 신왕조
는 얼마나 짧고 허무하게 그 시대를 마감했는가..  서둘러 구석을 받고 위왕이 되었다는 것이 실제 역사에 있어
서 얼마나 순간에 머무르고 만 사건이었는가.....순욱은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수춘에서 쓸쓸히 병사했던  아니면 조조에 의해 불편한 관계를 자의반타의반으로 받아들이고 자결했든..
나는 가끔씩 순욱의 그 왕좌지재의 웅대한 전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덧글 2개
 민경욱 조선일보 기획기사인 '삼국지, 나를 사로잡은 명장면'에서 김탁환이 쓴 글도 읽을만 합니다. 2004/01/04 11:01 
 허소자장 잘 읽었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묘사가 퍽 소설적이군요...
긴 한숨을 쉬는 모습이 아닌 눈을 빛내며 그윽이 하늘을 응시하는
순욱의 모습이 더 그려집니다....고맙습니다.
 2004/01/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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