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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맹획이 과연 이민족일까?2009-10-21 13:04:46
 희지재


3. 吳·蜀에서의 ‘中國’지리범주의 변천









고대 중국인들의 지리관념은 中國(內郡)·邊郡·塞外를 동심원적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秦皇과 漢武 같은 강력한 중화군주들이 夷狄들에 대한 직접지배의 이데올로기를 천명하고 邊疆에 적극적으로 外征하여 邊郡을 설치한 것은 위 절에서 본 바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邊郡의 개척이 곧바로 中國의 강역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邊郡은 문화적으로 內郡과 차별되는 개념이었으며 漢人들이 거주하기 걸맞은 곳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중국의 인구와 강역이 팽창함에 따라서 中國·邊郡·塞外의 경계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었지만, 華夷가 엄밀하게 분리 거주하는 동안에는 邊郡이 內郡으로 포섭되는 데에 상당한 지체를 겪는 것이 물론이었고, 직접지배라는 것도 皇帝支配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런 상황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은 華夷의 雜居가 본격화된 魏晉南北朝時期에 이르러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의 郡縣支配는 사실상 외형에 불과한 지배로서, 내실인즉 漢人과 夷狄이 철저히 분리돼 거주하고 夷狄의 전통적 질서가 자율적 형태로 온존되고 있었다. 胡·漢의 분리와 二重支配는 南匈奴를 五部로 분할한 曹操의 中原政權에서도 나타나며 이후 主體가 漢人에서 胡人으로 교체된 五胡諸國들에서도 행정기구의 분리라는 발전된 형태로 계승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中國’의 의미적 범주를 넓힐 필요를 느꼈던 것은 江南과 巴蜀에 지방정권을 세우고 할거한 劉備의 蜀漢과 孫權의 東吳였다. 이들 정권이 ‘中國’이라고 할 때는 中原의 曹魏를 일컫는 것이었지, 자신들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었다. 漢人邊疆政權으로서 두 국가는 할거한 지리적 공간을 중국의 의미 범주 내에 유입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秦末 혼란기에 劉邦이 巴·蜀·漢中을 거점으로 王業을 이뤄 國號를 漢이라고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天獄’이라고 불렸던 지리적 격절성으로 인해 화하의 변경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西漢政府가 수리시설과 경작지를 만들어 成都平原을 개발하고자 노력하면서 이 지역은 가히 ‘天府’라 할 경제력을 갖추었으나 他地의 士人들에게는 여전히 천시되었다. 특히 西南夷들의 原住地의 경우 『漢書』에 한 관료가 ‘불모의 땅에 무용한 백성이므로 성왕께서는 중국을 힘들게 하지 마시고 마땅히 군현을 폐기시켜서 이 지역 백성들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진언한 기록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므로 益州의 士人들은 劉備集團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집단기억을 통하여 이를 극복하려 시도하였다. 그것이 바로 ‘禹임금이 汶山郡 廣柔縣 사람이며 石紐에서 태어났다’는 설화였다. ‘禹임금이 서쪽 강족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설화는 西漢의 楊雄의 『蜀王本紀』에서 石紐태생설로 일차로 변하여 나타났는데, 이 설화는 蜀漢사람 譙周의 『蜀本紀』에서 그대로 계승됨과 동시에 蜀 출신의 西晉 관료 陳壽에 의해 작성된 『三國志』의 「蜀書」에도 나타나고 있다. 「蜀書 秦宓傳」에는 三國時期 蜀人의 한 사람인 秦宓이 외지인 夏候纂과 대화하면서 蜀漢 士人들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禹의 石紐태생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즉, 이 시기에 이 설화는 蜀漢人들에게 적극적으로 채택되어 계승되고 공유되고 기록되다가, 東晉의 常璩가 쓴 『華陽國志』에서 마침내 ‘石紐가 옛 문산군이며 禹임금 아버지 崇伯이 有莘氏 딸과 결혼하였고 치수 때문에 천하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禹임금을 石紐 刳兒坪에서 낳았다’는 기록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런 집단기억을 통하여 巴蜀을 華夏의 범주에 유입시키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天塹’이라고 일컬어졌던 양자강 일대도 별 다를 바 없었다. 交州 全郡이 邊郡 그것도 상당히 늦은 漢武帝 시기 설치된 것임은 上述했거니와, 揚州와 荊州 역시 秦代에 설치된 邊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東吳는 따라서 창업기에 江東, 건국기에 江南이라는 지리적 개념들을 사용하면서 해당 용어들의 의미를 확대해나갔다. 江南은 본래 楚의 雲夢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출발한 용어였으나 劉備集團에 의해 荊南三郡 혹은 荊州를 지칭하는 용어로 변경되었고 다시 孫權集團에 의해 東吳의 주된 疆域 전체를 의미하는 荊揚을 지시하는 용어로 바뀌어갔다. 江南은 荊州에서 시작해 넓게는 揚州까지 지시하는 포괄적 개념이 되었으며, 이에 따라 용어가 가진 구체성이 약화되자 江表·江右·江左·江東 같은 용어들이 보완적으로 쓰이게 됐던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中國을 세분한, 中夏에 대한 西夏(劉備集團 근거지)∇夏(孫權集團 근거지) 개념이 만들어지게 된다.





한편 邊郡을 內地化함과 아울러 華夷를 분리하는 漢代의 세계관은 三國時期에도 유지되고 있는데, 東吳의 경우 交州·廣州에 대한 태도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交州의 士氏 세력을 제거하고 관리들을 扶植한 것이나 交州·廣州로 行政體系를 이원화한 것에서는 실질지배의 의도가 엿보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와의 통과무역지로서 이 일대의 물산을 중시하기는 했지만, 荊州·揚州와 같은 대우는 받지 못하였다. 한 예로 薛綜은 베트남 원주민들에게 칭송받았던 인물인데도, ‘토착사회인들은 금수와 같아 굳이 교화시키려고 지방관을 둘 필요가 없다’고 이 지역의 풍토를 천시하였다. ‘中國’이란 개념이 四方·四夷에 상대적인 개념이었던 한, 中國이 아닌 漢人政權은 본래 蠻夷의 영역이었던 이 지역을 內地化하면서도, 기존 세계관의 동심원적 구조를 반복해서 재현하고 있었다. 蜀에서는 南中이 그런 지역이었으며, 이들 정권에게 스스로가 中華가 되기 위해서는 그 대립항인 邊郡의 존재는 필수적인 요청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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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획이 남만인이라는 근거 : 연의 > >일단, 맹획이 이민족이냐는 토론에 앞서 그나마 쉽게 볼수 있는 리동혁 본삼국지 인물사전을 이용하여 그들의 행적을 살펴봅시다. > >고정(?~225경) : 삼국지대 월수에 살고 있던 소수 민족의 왕. 후한 말 반란해 신도를 에워쌌다가 촉 장수 이엄에게 격퇴되었고, 223년 옹개에게 호응해 또 반란했는데, 225년 남방을 정벌한 제갈량에 의해 평정되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목이 잘렸다. > >맹획(?~225년 이후) : 촉나라 익주군 사람. 223년 익주군 수령 옹개가 동오에 붙을 때 함께 촉에 반항했는데, 옹개의 명에 따라 소수민족들을 불러 옹개를 따르게 했다. 한인과 소수민족들의 신망을 얻어, 225년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할 때 그를 붙들어 굴복시켰다. 진나라 상거의 화양국지에 의하면 맹획은 익주의 건녕 사람이고 나중에 어사중승 벼슬을 했다. > >옹개(?~225) : 삼국시대 익주군의 지방 호족. 유비에게 붙었다가 유비가 죽은 뒤 촉에서 임명한 태수 정앙을 죽이고 오에 항복해 손권이 임명한 영창태수가 되었는데, 225년 남방정벌을 떠난 제갈량이 아직 길에 있을 때, 이왕 고정의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 > >先主薨後,越巂叟帥高定元殺郡將軍焦璜,舉郡稱王以叛。益州大姓雍闓亦殺太守正昴。更以蜀郡張裔為太守。闓假鬼教曰:「張裔府君如瓠壺,外雖澤而內實粗,殺之不可縛與吳。」於是執送裔於吳。吳主孫權遙用闓為永昌太守,遣故劉璋子闡為益州刺史,處交、益州際。牂柯郡丞朱提朱褒領太守,恣睢。丞相諸葛亮以初遭大喪,未便加兵,遣越巂太守巴西龔祿住安上縣,遙領郡。從事蜀郡常頎行部南入,珥護李嚴書曉諭闓。闓答曰:「愚聞天無二日,土無二王。今天下派分,正朔有三,遠人惶惑,不知所歸。」其傲慢如此。頎至牂柯,收郡主簿考訊奸。褒因殺頎為亂。益州夷復不從闓,闓使建寧孟獲說夷叟曰:「官欲得烏狗三百頭,膺前盡黑,蟎腦三斗,斵木構三丈者三千枚,汝能得不?」夷以為然,皆從闓。斵木堅剛,性委曲,高不至二丈,故獲以欺夷。 >선주가 죽은 후, 월수의 수(叟)족 수괴 고정원이 군의 장군 초황을 살해하고, 군을 들어 칭왕하며 반했다. 익 >주(郡)의 대호족 옹개 역시 태수 정앙을 죽였다. (촉에서는) 곧 촉군의 장예를 태수로 삼았다. 옹개는 귀신의 >가르침이라 하며 말하길 '장예부군은 호리병박과 같아서, 겉은 비록 윤택하나 속알맹이는 조잡하니, 죽여서 >는 안되고 묶어서 오로 보내라' 이에 장예를 잡아 오로 보냈다. 오주 손권은 멀리서 옹개를 영창태수로 임명 >하고, 옛 유장의 아들 유천을 익주자사로 삼아 파견하여 교주와 익주의 경계에 두었다. 장가군승 주시군의 주 >포를 태수로 삼자, (이넘들이) 흉악히 굴었다. 승상 제갈량은 처음 대상(大喪)을 치러야 했으므로, >바로 병사를 보낼 수가 없어서, 월수태수 파서군의 공록을 보내 안상현에 주둔시키고, 멀리서 군을 다스리도 >록 하였다. 종사 촉군의 상기에게 부(部)를 거느리고 남으로 들어가게 하고, 도호 이엄으로 하여금 서간을 보 >내 옹개를 회유토록 하였다. 옹개가 답하길 '어리석은 이 넘이 듣건대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 >이 없다고 한다. 지금 천하가 갈라져, 정삭(正朔=각 나라의 공식 정월)만 셋이니, 멀리 있는 (이) 넘은 황송하 >여 어쩔 줄을 모르겠고, 돌아갈 바를 알 수가 없소이다.' 라 하였으니, 그 오만함이 이와 같았다. 상기는 장가 >에 이르러, 군 주부를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다. 주포가 이로인해 상기를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 익주(郡)의 이 >(夷)들이 다시 옹개를 따르지 않자, 옹개가 건녕군의 맹획을 시켜 이(夷)족,수(叟)족에게 유세하여 말하길 '관 >은 가슴팍이 검은 오구 300마리, 마뇌 3두, 3장까지 자란 탁목 3천매를 얻으려고 한다. 너희들은 (이게) 안되 >는 걸 알지 않느냐?' 이족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모두 옹개를 따랐다. 탁목은 단단하지만, 구불거리는 특성이 >있어서, 2장 이상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맹획이 (이런 말로) 이족을 속인 것이다. > >漢晉春秋曰:亮至南中,所在戰捷。聞孟獲者,為夷、漢所服,募生致之。既得,使觀於營陳之間,問曰:「此軍何如?」獲對曰:「向者不知虛實,故敗。今蒙賜觀看營陳,若祇如此,即定易勝耳。」亮笑,縱使更戰,七縱七禽,而亮猶遣獲。獲止不去,曰:「公,天威也,南人不復反矣。」遂至滇池。南中平,皆即其渠率而用之。或以諫亮,亮曰:「若留外人,則當留兵,兵留則無所食,一不易也;加夷新傷破,父兄死喪,留外人而無兵者,必成禍患,二不易也;又夷累有廢殺之罪,自嫌釁重,若留外人,終不相信,三不易也;今吾欲使不留兵,不運糧,而綱紀粗定,夷、漢粗安故耳。」 >제갈량전 주석 한진춘추 맹획기록.. > > >=================================== > >관련 기록들을 보면, >하지만, 옹개나 맹획은 호족 또는 익주군 사람 등으로 한족과 이족에게 인심을 얻었다라고만 나옵니다... >한진춘추에 굵은 글씨로 표시해놨는데 맹획이 말하길 '우리 남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남인'이라는 말에 따라 이민족으로 볼 수도 있는데,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 >화양국지나 한진춘추에서 직접적으로 그들이 이민족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동시대 사람인 고정은 확실히 이민족으로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월수의 이왕 혹은 월수의 수족으로. >제 생각에는 현지인 혹은 유력호족 등으로 보면 될것 같습니다.


덧글 1개
 희지재 제가 예전에 쓴 글 일부입니다. 푸른미르님이 쓰신 글에 대한 응답은 되지 못하고 그저 사이드 리딩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원래 각주가 다 있는데, 붙여넣기 하는 과정에서 각주는 다 지워지네요. 글씨가 역삼각형으로 깨진 부분은 東자입니다. 두 정권은 각자 손오정권의 강역이 東夏, 유촉정권의 강역이 西夏임을 주장해서 사실상 華夏를 확장해 보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이게 진정한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천하삼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天下라는 것도 우주적 개념의 六合과 구분돼서 이민족들의 지역을 배제하는 개념으로 쓰이는 용례가 많기 때문이지요. 천하를 삼분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려면 파촉과 강남이 천하의 범주에 들어와야 됩니다. 위진남북조를 연구하는 학계에서 거론되는 사료들을 보면 저 정권들이 그런 노력을 많이 기울인 흔적이 있고요. 2009/10/2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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