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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획이 과연 이민족일까?2009-08-20 19:16:13
 푸른미르


맹획이 남만인이라는 근거 : 연의

일단, 맹획이 이민족이냐는 토론에 앞서 그나마 쉽게 볼수 있는 리동혁 본삼국지 인물사전을 이용하여 그들의 행적을 살펴봅시다.

고정(?~225경) : 삼국지대 월수에 살고 있던 소수 민족의 왕. 후한 말 반란해 신도를 에워쌌다가 촉 장수 이엄에게 격퇴되었고, 223년 옹개에게 호응해 또 반란했는데, 225년 남방을 정벌한 제갈량에 의해 평정되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목이 잘렸다.

맹획(?~225년 이후) : 촉나라 익주군 사람. 223년 익주군 수령 옹개가 동오에 붙을 때 함께 촉에 반항했는데, 옹개의 명에 따라 소수민족들을 불러 옹개를 따르게 했다. 한인과 소수민족들의 신망을 얻어, 225년 제갈량이 남방을 정벌할 때 그를 붙들어 굴복시켰다. 진나라 상거의 화양국지에 의하면 맹획은 익주의 건녕 사람이고 나중에 어사중승 벼슬을 했다.

옹개(?~225) : 삼국시대 익주군의 지방 호족. 유비에게 붙었다가 유비가 죽은 뒤 촉에서 임명한 태수 정앙을 죽이고 오에 항복해 손권이 임명한 영창태수가 되었는데, 225년 남방정벌을 떠난 제갈량이 아직 길에 있을 때, 이왕 고정의 부하에게 피살되었다.


先主薨後,越巂叟帥高定元殺郡將軍焦璜,舉郡稱王以叛。益州大姓雍闓亦殺太守正昴。更以蜀郡張裔為太守。闓假鬼教曰:「張裔府君如瓠壺,外雖澤而內實粗,殺之不可縛與吳。」於是執送裔於吳。吳主孫權遙用闓為永昌太守,遣故劉璋子闡為益州刺史,處交、益州際。牂柯郡丞朱提朱褒領太守,恣睢。丞相諸葛亮以初遭大喪,未便加兵,遣越巂太守巴西龔祿住安上縣,遙領郡。從事蜀郡常頎行部南入,珥護李嚴書曉諭闓。闓答曰:「愚聞天無二日,土無二王。今天下派分,正朔有三,遠人惶惑,不知所歸。」其傲慢如此。頎至牂柯,收郡主簿考訊奸。褒因殺頎為亂。益州夷復不從闓,闓使建寧孟獲說夷叟曰:「官欲得烏狗三百頭,膺前盡黑,蟎腦三斗,斵木構三丈者三千枚,汝能得不?」夷以為然,皆從闓。斵木堅剛,性委曲,高不至二丈,故獲以欺夷。
선주가 죽은 후, 월수의 수(叟)족 수괴 고정원이 군의 장군 초황을 살해하고, 군을 들어 칭왕하며 반했다. 익
주(郡)의 대호족 옹개 역시 태수 정앙을 죽였다. (촉에서는) 곧 촉군의 장예를 태수로 삼았다. 옹개는 귀신의
가르침이라 하며 말하길 '장예부군은 호리병박과 같아서, 겉은 비록 윤택하나 속알맹이는 조잡하니, 죽여서
는 안되고 묶어서 오로 보내라' 이에 장예를 잡아 오로 보냈다. 오주 손권은 멀리서 옹개를 영창태수로 임명
하고, 옛 유장의 아들 유천을 익주자사로 삼아 파견하여 교주와 익주의 경계에 두었다. 장가군승 주시군의 주
포를 태수로 삼자, (이넘들이) 흉악히 굴었다. 승상 제갈량은 처음 대상(大喪)을 치러야 했으므로,
바로 병사를 보낼 수가 없어서, 월수태수 파서군의 공록을 보내 안상현에 주둔시키고, 멀리서 군을 다스리도
록 하였다. 종사 촉군의 상기에게 부(部)를 거느리고 남으로 들어가게 하고, 도호 이엄으로 하여금 서간을 보
내 옹개를 회유토록 하였다. 옹개가 답하길 '어리석은 이 넘이 듣건대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땅에는 두 임금
이 없다고 한다. 지금 천하가 갈라져, 정삭(正朔=각 나라의 공식 정월)만 셋이니, 멀리 있는 (이) 넘은 황송하
여 어쩔 줄을 모르겠고, 돌아갈 바를 알 수가 없소이다.' 라 하였으니, 그 오만함이 이와 같았다. 상기는 장가
에 이르러, 군 주부를 잡아들여 심문을 하였다. 주포가 이로인해 상기를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 익주(郡)의 이
(夷)들이 다시 옹개를 따르지 않자, 옹개가 건녕군의 맹획을 시켜 이(夷)족,수(叟)족에게 유세하여 말하길 '관
은 가슴팍이 검은 오구 300마리, 마뇌 3두, 3장까지 자란 탁목 3천매를 얻으려고 한다. 너희들은 (이게) 안되
는 걸 알지 않느냐?' 이족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모두 옹개를 따랐다. 탁목은 단단하지만, 구불거리는 특성이
있어서, 2장 이상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맹획이 (이런 말로) 이족을 속인 것이다.

漢晉春秋曰:亮至南中,所在戰捷。聞孟獲者,為夷、漢所服,募生致之。既得,使觀於營陳之間,問曰:「此軍何如?」獲對曰:「向者不知虛實,故敗。今蒙賜觀看營陳,若祇如此,即定易勝耳。」亮笑,縱使更戰,七縱七禽,而亮猶遣獲。獲止不去,曰:「公,天威也,南人不復反矣。」遂至滇池。南中平,皆即其渠率而用之。或以諫亮,亮曰:「若留外人,則當留兵,兵留則無所食,一不易也;加夷新傷破,父兄死喪,留外人而無兵者,必成禍患,二不易也;又夷累有廢殺之罪,自嫌釁重,若留外人,終不相信,三不易也;今吾欲使不留兵,不運糧,而綱紀粗定,夷、漢粗安故耳。」
제갈량전 주석 한진춘추 맹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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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록들을 보면,
하지만, 옹개나 맹획은 호족 또는 익주군 사람 등으로 한족과 이족에게 인심을 얻었다라고만 나옵니다...
한진춘추에 굵은 글씨로 표시해놨는데 맹획이 말하길 '우리 남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지요...
'남인'이라는 말에 따라 이민족으로 볼 수도 있는데,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화양국지나 한진춘추에서 직접적으로 그들이 이민족이다라고 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동시대 사람인 고정은 확실히 이민족으로 적혀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월수의 이왕 혹은 월수의 수족으로.
제 생각에는 현지인 혹은 유력호족 등으로 보면 될것 같습니다.

덧글 1개
 희지재 제 생각에 맹획이 어떤 ethnic group에 속했는가 하는 identity를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파촉 지방 자체가 중국이 아닌 변군으로 취급 받았기 때문에 파촉인들은 기본적으로 '나도 중국인이라고 인정해주세요' 하고 인정투쟁을 해야 하는 처지였지요. 한나라 시대에 걸쳐 서한의 양웅부터 촉한의 진복까지 '우임금이 파촉에서 태어났다'는 언급을 그래서 반복적으로 하게 됩니다. 파촉을 중국 범주에 넣어 보려는 노력입니다. 기본적으로 파촉 자체가 중국이 아니고 다만 변군인 상황이었다는 점이 감안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09/10/2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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